아침 7시, 그녀는 출근 준비를 시작한다.
머리를 단정하게 묶고, 파운데이션을 얇게 펴 바른다.
하늘색 유니폼에 발을 집어넣기 전, 한숨과도 같은 구두를 다시 신는다.
그녀는 비행기 안에서, 또는 철도 플랫폼에서 미소 짓는다.
하지만 아무도 묻지 않았다.
그 미소가, 얼마나 많은 고통의 시간을 통과한 끝에 만들어졌는지를.
화장은 선택이 아니라 암묵적 의무,
굽 높은 구두는 유니폼의 일부로 강요되며,
'단정함'이라는 미명 아래 여성 노동자는 꾸밈을 '업무'로 수행해왔다.
그 침묵을 깨고, 이제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이들이 있다.
대한항공 승무원, 철도노조 여성 조합원들.
그들은 말한다.
“우리가 원하는 건, 아름다움이 아닌 건강과 존중입니다.”
대한항공 승무원 유니폼은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세련된 디자인, 눈에 띄는 하늘색.
하지만 그 화려함 이면에 숨겨진 건 여성 노동자의 신체적 고통이다.
“아름다움이 아니라, 의무감 속에 시작된 꾸밈노동이었다.”
항공사 유니폼 논란은 단순한 ‘복장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직장에서 여성에게 어떤 역할과 태도를 기대하는지를 보여주는 사회적 거울이다.
철도노동자, 특히 여성 승무원과 서비스직 종사자들도 비슷한 문제를 겪고 있다.
‘단정함’이라는 이유로, 평범한 운동화 대신 구두 착용이 당연시되고 있는 현실.
이에 철도노조 여성 조합원들은 목소리를 높였다.
철도노조는 꾸밈노동을 넘어,
"안전하고 건강한 근무 환경",
즉 실용적인 유니폼과 신발 선택권 보장을 요구하고 있다.
화장은 자유로운 선택이어야 한다.
하지만 많은 직장에서는 여전히 여성에게만 '기본 예의'로 간주된다.
이러한 꾸밈노동은 단순한 복장이 아니라 성별에 따른 이중 기준을 반영한다.
남성에게는 존재하지 않는 ‘꾸밈의 기준’,
여성에게는 ‘성실함’이 아닌 ‘외모’로 평가받는 현실.
꾸밈노동은 업무 능력과는 무관하다.
그러나 사회는 여전히 이를 노동의 일부로 내면화시키고 있다.
이제는 더 이상 침묵하지 않는다.
특히 MZ세대 여성 노동자들은 더 당당히 묻는다.
“왜 꾸며야만 직장인의 자격이 주어지나요?”
성평등은 거창한 담론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신발 하나, 치마 하나, 미소 하나”**에 담긴 불평등을 인식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유니폼은 단순한 복장이 아니다.
그것은 기업이 노동자를 바라보는 시선,
그리고 사회가 여성에게 기대하는 역할을 담고 있다.
이제 우리는 묻는다.
꾸밈노동을 거부한다는 것은,
자신의 몸을 주체적으로 마주하고 존엄을 요구하는 행위이다.
더 이상 ‘여성다움’을 강요하지 말자.
지금 필요한 것은 ‘단정함’이 아닌 존중이다.